조선시대 왕들의 불교 관련 배틀 기록
궁궐에 유학자가 가득한 조선시대, 조선의 왕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신하들과 불교 관련 배틀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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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하, 불교를 폐지하시옵소서!" |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조선시대 왕들의 대답에는 그들의 캐릭터가 그대로 묻어나옵니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 이단(李旦)
훌륭한 무장이었지만 학문이 조금 부족했던 태조는 논쟁을 할 때 비록 논리적 오류를 저질렀지만, 신하의 입을 막는데는 효과적인 반격을 가했습니다.
태조 : "이색도 불교를 믿었다, 네가 이색보다 잘났느냐?" |
정종(定宗) 이방과(李芳果) → 이경(李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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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 "불교의 원리는 자비인데, 자비가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불교가 허망하다고 하는데, 내가 왕이 되기전에 귀신에 들린 사람을 본 적도 있다." |
평생 무장으로 살았던 정종은 어리숙한 논리를 펼치다가 노련한 유학자인 하륜에게 말빨로 관광을 당해버렸습니다.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
술수가 대단했던 태종은 관료들이나 유학자들이 모두 부담스러워 하는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이용하여 불교 관련 문답에서 교묘히 빠져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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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 "나도 불교가 허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중국이 불교를 신봉하고 있으니, 우리가 아주 탄압할 수는 없다." |
세종대왕(世宗大王) 이도(李裪)
처음에는 불교를 배척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나이가 들면서 노골적으로 불교를 옹호했던 세종대왕은 신하들이 불교에 대해 굉장히 수준 높은 공부를 선행한 뒤에 매우 학구적인 토론 배틀을 뜨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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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 "석가의 설교는 진위를 알 수 없는 것인데, 역대의 호걸스러운 임금들이 지금까지 불교를 다 없애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마음을 깨끗이 하고 탐욕을 적게 내는 것을 도로 삼는다는 것은 도와 비슷한 소리지만 바른 도는 배우지 않고 그른 도를 근본으로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그 교리란 이치에 가까운 듯하면서도 진리를 크게 어지럽히는 것이다." |
불교에 한해서는 상당히 강하게 고집을 부렸던 세종대왕은 수준낮은 불교 폐지 청원은 대부분 무시하고 자신의 의지를 뚝심있게 관철하였습니다.
세조(世祖) 이유(李瑈)
터프가이 지망생이었던 세조. 실록에 기록된 바는 아니지만 야사 따르면 다음과 같이 쎈 척을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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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 "칼을 가져와라, 내 저놈을 죽여 부처에게 사죄하겠다." |
지중추(知中樞) 홍일동(洪逸童)은 인격이 우뚝하게 뛰어나고 성품이 천진(天眞)하며 겉치레를 꾸미지 아니하였다.
사부(詞賦)에 능하고 술을 많이 마셨는데 정신없이 취하면 풀잎으로 피리 소리를 내었는데, 소리가 비장(悲壯)하고 위엄이 있었다.
평상시에 혼자 오래된 거문고를 어루만졌는데, 줄은 있어도 악보(樂譜)는 없었다. 말하기를, “나의 거문고는 천고(千古)에 전하지 않는 도연명(陶淵明)의 지취(志趣)를 얻었다.
옛날에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타자 오직 종자기(鍾子期)만이 그 뜻을 알았는데, 나의 거문고는 도연명이 나오지 않으면 세상에서 알 사람이 없다.” 하였으니, 천지간의 기이한 남자라 할 것이다.
일찍이 상감 앞에서, 부처의 일을 논박하자 세조(世祖)가 거짓으로 성내기를, “이놈을 죽여서 부처에게 사례하겠다.” 하고, 좌우에 있는 사람에게 명하여 칼을 가져오라 하여도 홍일동은 태연하게 변론했으며, 좌우가 거짓으로 칼로 정수리를 두 번이나 문질렀지만 돌아보지 아니하고 두려운 빛이 없었다.
세조가 장하게 여겨, “네가 술을 먹겠느냐.” 하니, 일동이 대답하기를, “번쾌(樊噲)는 한(漢) 나라 무사(武士)이며, 항왕(項王.항우)은 다른 나라의 군주였는데도 항왕이 주는 한 동이 술과 돼지다리 하나를 사양치 않았는데, 하물며 성상께서 주시는 것이겠습니까.” 하였다.
은 항아리에 술을 가득히 담아 내려주었는데 그는 힘차게 마셨다.
상감이 이르기를, “죽음을 두려워하느냐.” 하니, 홍일동이 대답하기를, “죽는 것이 마땅하면 죽고, 사는 것이 마땅하면 사는 것인데, 감히 죽고 사는 것으로써 그 마음을 바꾸겠습니까.” 하니, 상감이 기뻐하여 초구(貂裘, 담비 가죽으로 지은 옷) 한 벌을 주어서 위로하였다.
사부(詞賦)에 능하고 술을 많이 마셨는데 정신없이 취하면 풀잎으로 피리 소리를 내었는데, 소리가 비장(悲壯)하고 위엄이 있었다.
평상시에 혼자 오래된 거문고를 어루만졌는데, 줄은 있어도 악보(樂譜)는 없었다. 말하기를, “나의 거문고는 천고(千古)에 전하지 않는 도연명(陶淵明)의 지취(志趣)를 얻었다.
옛날에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타자 오직 종자기(鍾子期)만이 그 뜻을 알았는데, 나의 거문고는 도연명이 나오지 않으면 세상에서 알 사람이 없다.” 하였으니, 천지간의 기이한 남자라 할 것이다.
일찍이 상감 앞에서, 부처의 일을 논박하자 세조(世祖)가 거짓으로 성내기를, “이놈을 죽여서 부처에게 사례하겠다.” 하고, 좌우에 있는 사람에게 명하여 칼을 가져오라 하여도 홍일동은 태연하게 변론했으며, 좌우가 거짓으로 칼로 정수리를 두 번이나 문질렀지만 돌아보지 아니하고 두려운 빛이 없었다.
세조가 장하게 여겨, “네가 술을 먹겠느냐.” 하니, 일동이 대답하기를, “번쾌(樊噲)는 한(漢) 나라 무사(武士)이며, 항왕(項王.항우)은 다른 나라의 군주였는데도 항왕이 주는 한 동이 술과 돼지다리 하나를 사양치 않았는데, 하물며 성상께서 주시는 것이겠습니까.” 하였다.
은 항아리에 술을 가득히 담아 내려주었는데 그는 힘차게 마셨다.
상감이 이르기를, “죽음을 두려워하느냐.” 하니, 홍일동이 대답하기를, “죽는 것이 마땅하면 죽고, 사는 것이 마땅하면 사는 것인데, 감히 죽고 사는 것으로써 그 마음을 바꾸겠습니까.” 하니, 상감이 기뻐하여 초구(貂裘, 담비 가죽으로 지은 옷) 한 벌을 주어서 위로하였다.
- 필원잡기(筆苑雜記), 서거정(徐居正 1420~1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