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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고기를 먹다니! 스님이 육식을 하면 계율 위반 아닌가요?

인터넷에는 가끔 스님들이 고깃집에서 육류를 드시는 모습을 몰래 도촬하여 조롱하는 모습이 올라오곤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도 들이대지 않는 잣대이지만, 유독 스님들의 육식은 우리 사회가 터부시합니다. 그런데, 계율 상 스님이 고기 드셔도 되나요?

감히 고기를 먹다니! 스님이 육식을 하면 계율 위반 아닌가요?

'스님은 육식하면 안 된다'는 말, 어디서 시작되었나요?

대중적으로 흔히 접할 수 있는 편견 중 하나는 '스님은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믿음입니다. 불교가 자비를 근본으로 삼는 종교인 만큼 생명을 해치는 행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있다는 점은 분명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육식을 금한다'는 생각은 실제 불교에서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계율 속 맥락과는 다소 차이점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인 팔정도나 비구계, 식계(食戒) 등을 살펴보면, 핵심은 '살생하지 말 것'이지 '육식을 절대 금지할 것'이라는 문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초기 불교 당시에도 스님들은 탁발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음식을 받는 형태로 식사를 하였으며, 그 음식이 고기든 채소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단, 일부러 남이 살생하도록 직간접적으로 유도하거나, 자기가 먹기 위해 죽인 고기는 섭취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수행자인 스님은 고기를 먹으면 안되나요? 불교 계율에서 보는 식사의 기준

불교의 핵심 계율 중에는 '오정육'(五淨肉)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다음 다섯 가지 조건을 충족한 고기는 먹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 본인이 죽이는 장면을 보지 않은 고기
  • 본인이 죽이는 소리를 듣지 않은 고기
  • 본인이 자신을 위해 잡은 것이 아님을 알고 난 고기
  • 수명이 다해 스스로 죽은 생물의 고기
  • 매나 독수리 따위가 먹다 남은 고기

이러한 기준을 통과한 고기는 깨끗한 고기(정육)으로 간주되어 먹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초기 불교의 입장입니다. 이 원칙은 지금도 남방 상좌부 불교(테라와다 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탁발하는 스님들은 신도들이 제공한 음식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받아 감사한 마음으로 남김없이 섭취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대승불교인 조계종에서도 공식적으로 스님들의 채식을 권장하되, 의무로 강제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최근 조계종 종정 진제 대종사도 건강상의 이유로 육류를 제한적으로 섭취할 수 있음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종헌이나 계율 어디에도 '육식을 하면 파계'라는 극단적인 성격의 문구는 존재하지 않으며, 공식적으로 이와 비슷한 발언조차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불교가 추구하는 계율의 본질은 '탐욕으로부터의 해탈'에 있기 때문에, 육류라고 해도 또다른 탐욕(식욕)의 대상이 되지만 않는다면 딱히 섭취하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스님이 육류를 섭취하시는 게 뭐가 어떻단 말입니까? 스님이 고기드시는 모습보다 비열하게 남의 모습을 도촬해서 인터넷에 올리며 조롱하는 모습이 더욱 악랄하고 치졸한 행위입니다.

장기 채식의 부작용, 적절한 육식은 스님들의 건강 유지를 위한 유연한 선택

스님들이 채식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경우 겪는 건강 문제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주로 섭취하는 곡물과 두부, 나물류는 탄수화물 비중이 높고,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 B12가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건강 문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체지방 증가 및 복부비만
  • HDL 콜레스테롤 감소, LDL 콜레스테롤 비율 증가
  • 근감소 및 대사기능 저하
  • 빈혈, 무기력, 기억력 저하
  • 종합적인 성인병과 심혈관 문제를 야기

실제로 국내 주요 선원에서는 일정 기간 단백질 보충을 위해 유제품이나 육류를 제한적으로 섭취하는 스님들도 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근육량이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에, 소량이라도 좋으니 완전 단백질 섭취가 더욱 중요해집니다.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지만 내부적으로는 건강 관리를 위해 식단 조절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고기 먹는 스님 = 땡중'이라는 말은 무지의 산물이자 이제는 타파되어야 할 편견

'땡중'이라는 말은 사실 사찰 규율을 어기거나 도박, 음주 등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스님을 비난할 때 사용되었던 용어입니다. 그러나 일부 대중은 '육식'이라는 단일 행위만으로도 이 단어를 남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불교 계율과 수행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오해이며, 단편적인 도덕 기준으로 전체 스님 사회를 왜곡하는 편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통과 현대의 사이에서, 이제는 바뀌어야만 할 불교 식문화의 변화

현대 불교는 점점 유연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환경, 건강, 사회적 구조가 모두 달라졌기에 불교도 그 변화에 맞춰 자신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행자들도 과학적인 영양 균형을 고려해 식단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는 오히려 계율의 정신을 더 잘 반영하는 방식입니다. 대 정보화 시대를 맞아 스님과 신도들도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챗GPT를 비롯한 AI를 통해 건강고민을 해결하는 마당에 심혈관계 질환반신불수, 수명단축이라는 눈앞에 놓인 심각한 위협을 직면하고도, 부처님께서 '육식하지 말라' 하신 것도 아닌 마당에 자기 멋대로 아집에 사로잡혀 스스로 육식을 금하는 스님과 신도들은 오히려 점점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더불어 일부 스님들은 자연농법으로 유기농 채소를 길러 채식을 실천하면서도, 건강이 허락하지 않을 경우 제한적으로 동물성 식품을 섭취합니다. 이 모든 선택은 공동체 내부의 합의와 수행자의 철학에 따라 조율되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현명한 선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교는 본래 '자유와 해탈'의 종교입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스님도 고기 드실 수 있습니다.

스님이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협소한 시각입니다. 불교의 진정한 가치는 '형식'이 아니라 '본질'에 있으며, 계율도 해석과 실천의 유연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계율은 강제적인 금기가 아니라 수행의 길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가이드라인입니다.

고기를 먹는 스님은 파계자가 아니며, 오히려 건강을 유지하고 수행을 지속하기 위한 유연한 선택을 한 것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이며, 이것이야말로 불교의 궁극적인 가르침입니다.

  • 《和尚背女人》
    《스님과 여인》
    从前,有一大一小两个和尚出门化缘,起到一条河边时,看见一个妙龄女子被水围困着不能过河,于是大和尚毫不犹豫地将她背起过了河。
    옛날, 한 명의 큰 스님과 어린 스님이 탁발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들이 강가에 이르렀을 때, 한 묘령의 여인이 강물을 건너지 못하여 곤란해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큰 스님은 망설임 없이 여인을 업고 강을 건넜습니다.
    小和尚大为不解,晚上便忍不住问道:“师兄,出家人六根清净,你背了那女人,不是犯了戒吗?”
    어린 스님은 이러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저녁에 이르러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물었습니다. : "사형, 출가하신 몸으로 여인의 몸을 가까이 하셨으니, 계율을 범하신 것이 아닙니까?"
    大和尚答道:“我背那女子一过河就放下了,可师弟你,为什么到现在还背着她放不下来?”
    그러자 큰 스님이 대답하셨습니다. : "나는 곤란에 빠진 여인을 업어주었지만 강을 건너자마자 내려놓았단다. 그런데 사제는 어째서 아직도 그녀를 업은 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가?"

중요한 것은 본질에 대한 깨달음과 실천입니다. 그 중간에 있는 모든 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계율과 사람들의 시선, 사회적 비난에만 집착하면 결국 정작 추구해야 할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육식을 했네 마네 같은 수준낮은 가십으로 꼬투리를 잡아 누군가를 비난할 시간이 있으면 그럴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남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나 자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이 더욱 현명하고 아름다운 선택일 것입니다.